1. 열면서
3년간 일하던 일본IT파견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다음 이직처에서 내정이 났고 입사표명도 끝나서 어느정도 정리가 된 상태이니, 이제 쓸 수 있을 듯합니다. 이과, 공대생 아닙니다. 어문계열 전공이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느정도는 컴퓨터와는 친근감이 있는 편이었습니다. 고장나도 검색해서 알아보면서 고쳐볼수 있는 정도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는 아니고 그저 취미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를 만지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없으며 재미있어 하는 편이었습니다.
일본유학후에 했던 일들은 영업계열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문계열이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을 갈고 닦고싶다고 생각한 것도 있고, 일본에서 비지니스를 함에 있어서 필요한 매너나 상식을 얻기에 영업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나중에 영업에서 IT로 옮길때나 했던 생각이고, 사실은 유학후에도 계속 일본에 남아있고 싶었기 때문에 적당히 내정 내주는 회사를 찾아서 입사했다, 라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래서 블랙회사에 들어가버리고 만것이었지만...
해외생활의 절대조건은 비자입니다. 모든 것은 그 후에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블랙이든 뭐든 비자만 내준다면 죽지않을 만큼만 고생하고 그 다음을 바라보면 된다는 전략도 유효합니다. 그래서 그때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는 없습니다. 블랙회사라도 경력은 경력이니 그것을 살려서 한번더 영업직으로 전직을 하게 되었고, 작은회사여서 그런가 사내 시스템을 만지는 일도 겸임하게 되어 이걸로 어떻게든 IT업계를 찔러보자, 하게되서 입사한 것이 지금의 IT파견회사였습니다.
2. 입사
지금와서 입사당시를 회상해보면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걸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31살정도에 들어와서 결코 적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면접도 별말 없었습니다. 그냥 경력 쭉~보더니 왜 IT에 들어오려고 하느냐 이런거 조금 물어보고서는 바로 입사허가가 나왔습니다. 그 면접관(=나름 지점장) 분과는 나중에도 죽이 잘 맞긴했지만, 인상이 좋다고, 필링이 좋다고 이런 이유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고 분명 다른 이유가 있긴 할 것인데, 잘은 모르겠네요.
IT업계라는게 딱 하나로 정리할 수 있는 듯이 보여도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 인프라 엔지니어랑 프로그래머랑은 아얘 다른 테크트리입니다. 각 분야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혀 다릅니다. 저는 막연히 IT라고만 생각만 하고 들어온 터라 도대체 뭘 집중적으로 공부해야하는지 이 때 당시에는 판단이 어려웠습니다. 일단 일을 해보자, 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고 보지 않으면 결정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무작정 입사원서부터 들이댄 격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에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는 분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워낙 전문지식을 필요로하고, 대부분이 이런 지식을 정력적으로 쫒으시는 분들이 많기때문에 어느정도 프라이드가 강한 분들이 많아서 "넌 뭐하고싶은거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저에게 "너같은게 무슨"이라는 반응을 하시는 분도 뵈었습니다. 당시 저는 화는 하나도 안나고 저 사람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분은 아직도 안잊혀지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런 저에게 시간을 내줘서 고맙고 죄송할 뿐입니다. 그래도 제가 그 시간을 귀중히 여겨서 지금은 배움에 힘쓰려고 노력하는 중이니, 지금 다시 만난다면 친해질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듭니다.
3. 파괴
저는 이 업계의 큰 특징을 이 업계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모두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지식이 있고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이 업계의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프로그래밍 언.어 라고 하니, 그 언어들의 시스테믹한 성질이 인간이 쓰는 자연어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어학적인 면이 있을 것이고 제 전공과 어느정도는 연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네, 별로 많이 상관이 없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느껴지는 전혀 다른 느낌. 왜 이 분야에 수학이 필요한 건지 철저히 알게 되는 느낌입니다. 결국 이런 것들이 현실세계를 추상화 해서 규칙을 표현하는 과정들인데, 이건 언어학이 아니라 수학이거든요. 이런식으로 제가 가지고 있던 판단들을 하나하나 깨가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프로그램을 짤것이라는 대 전제는 바로 깨졌구요.
인프라와 프로그래밍이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다른 영역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는데, 인프라의 경우 기본적으로 일하는데 사용하는 명령어등은 전부 외우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고 그랬습니다. 확실히 자주 쓰는것이나 중요한 것들은 외우게 되는데요, 항상 다들 쓰기전에 매뉴얼 등을 착실하게 확인하고 나서 쓰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대규모 시스템일수록 한번 때려넣는 명령어의 영향이 크기때문에 다들 신중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을 구상할 순 없더라도 프로그램을 읽는 능력은 어느정도 다들 가지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더라구요. 이거는 솔직히 주변 상황이나 안건 내용에 따라 다르긴 한데, 개개인의 능력이 편차가 클 때가 있어서 놀랄때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오픈계열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컴퓨터에서 아이피주소 확인하는 명령어 못치는 분도 계시고...?
입사. 일단은 해보았다
어쩌다보니 입사는 하였습니다. 파견업체니까요 입사하고 바로 일할 수 있는건 아니고요, 경력과 매칭해서 안내받게 되는데 어거지로 가야한다 이런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경험이었기때문에 그에 대해서 주장할 수 있는 건덕지는 없다고 생각했구요, 그래서 현장의 고객분들께서 OK하시든, 이미 현장에 들어가 있는 선배 엔지니어가 OK해 줘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혹 현장 못 들어가는거 아닌가 하고 걱정하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한 1달 정도 있다가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거기에 3년이나 있었습니다. 나름 어찌어찌 적응은 할 수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얘기 할 수 있는 것이고 당시에는 불안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관문은 돌파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빈약한 지식을 메워보겠다며 자격증 공부에 매달리며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