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정
마음은 이런데, 사실 이 시기가 굉장히 가난한 시기라 접근성이 가까운 곳을 월세로 잡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너무나 비싸고 취업도 안한 저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애시당초, 1년치 월세 한번에 내는 정도 아닌 다음에야 고정수입이 많지 않은 외국인에게 월세 임대계약서를 써주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이럴때 고려해 볼수 있는 것이 룸쉐어입니다. 신주쿠 햐쿠닝쵸(百人町)에서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봤고, 마침 학교가 신주쿠라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2. 살면서
2011년 여름~2012년초에 살았던 이곳은 신오오쿠보역에서 한 15분정도 떨어진 도영(都営)아파트였습니다. 전체적으로는 3LDK 였고, 실제 임대계약을 한 것은 조선족 부부였습니다. 큰 방 1개만 그 부부가 쓰고, 하나는 서재고, 하나 남는걸 룸쉐어로 내놓은 거였습니다. 6조 방 하나를 2명이서 같이 썻는데. 한달 월세가 3만엔 정도였습니다. 이 안에 수도, 전기, 가스요금이 전부 포함되어있었고, 부부의 배려로 집 안에 있는 쌀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고, 거의 외식이라 쌀을 거의 안먹었습니다)
도영주택이라서 서류가 엄격하다나 뭐라나 해서 여기 주소로 주소이전을 못하게 했습니다. 도영아파트에 가족세대는 무슨 혜택이 있어서 다세대가 거주하면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이때는 전입,전출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지라 별로 상관은 안했습니다. 우편은 보내도 된다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살았습니다.
남편분이 목회하시는 분이었고, 룸메는 부부와 같은 조선족이었습니다. 조선족을 처음 겪어봤던 때였습니다. 한국인인듯한 중국인인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때 워낙 밖으로 많이 돌아다녀서 이 분들과 많이 어울리진 못했습니다.
룸메친구도 알바가 바쁜지 거의 얼굴을 마주치기만 할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2번정도 뿐이었습니다. 룸쉐어는 룸메친구가 중요합니다. 성향이 맞는 친구를 찾으면 정말 즐거울 수 있겠지만, 꼭 그러리란 법도 없습니다. 잘 얼굴을 못보는 생활패턴을 가진 룸메가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생활패턴때문에 서로의 숙면 등을 방해하는 경우는 피해야하죠. 그런데 집계약시에 룸메를 만날 수 있는 경우가 적기때문에 매우 복불복인 요소입니다.
3. 나올 때
주소를 못쓴다는 점이 불편해 졌습니다. 어떠한 중요한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때, 기본적으로 신분증 주소등을 대조하니까요. 또한 여러사람들이 하나의 문으로 들락거리니 밤에 들어갈 때 약간 눈치보였습니다. 그리고 개인 공간이 없는 형식이었으니까요, 결정적으로는 혼자 방하나 쓰고 싶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