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거주 10년간 경험한 주거생활:UR

 

1. 결정

이 UR이라는 주거 형태는 독립행정법인 도시재생기강(独立行政法人都市再生機構)이라는 곳에서 공급하는, 간단히 말하자면 공적공급주택입니다. 갱신료도 없고 주거 기한도 없어서 주거 안정성이 높습니다. 최근에는 양극화가 심해서, 도심 외곽에서는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고, 도심의 신축 UR은 인기가 높아 없어서 못파는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가족세대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라 1인가구등에 맞는 평수가 비교적 적습니다.

이 당시에 도쿄23구중 하나인 이타바시(板橋)의 민간 물건에 살고 있었어요. 29평방미터 정도의 곳에 살았는데 너무 좁았습니다. 또한 이때 직장이 긴자였는데, 아침 출근길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이런 도심에 들어가는 출근지하철의 혼잡함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얼마나 사람이 많으면 바닥에 그 다음열차 기다리는 곳, 그 다음다음 열차 기다리는 곳 이런 식으로 다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엄청 많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콩나물인지라 딱히 손잡이를 안잡아도 될 지경이 됩니다. 어쨋든 이걸 3년 경험하니 사람에 치이는 것에 대해 너무 지쳤습니다. 아얘 도쿄를 떠나버리자 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찾다보니 정말 시골로 이사해 버리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이미 한번 UR에서 살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일단 조언을 구하고 통근거리안에서 물건을 찾았는데 어쩌다보니 쿠키시(久喜市) 까지 갔습니다. 쿠키시는 사이타마 변방(토치기에 가깝습니다)인데 이 곳이 시로 승격된 것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사이타마 정도되면 전철을 타고 조금만 몇 정거장 지나면 갑자기 시골정경 펼쳐지고 그런데 여기는 정말 그런 곳이었습니다. 집 사이의 거리도 멀고 건물도 낮고, 논있고 밭있고, 조류공원도 있을정도였습니다. 이 당시 워낙 도심의 복잡스러움에 지쳐있는 저는 주변을 둘러보고 이곳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살면서

역에서 걸어서 40분은 걸리는 거리에 UR단지가 있었습니다. 지어진지 50년이 넘은 물건들이었는데 이런곳은 입주하던 사람이 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규칙적으로 내부를 리폼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래된 분위기 자체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닙니다. 50년전엔 일본인의 평균신장이 더 낮았을 테니 그에 맞춰서 천장이 낮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건 리폼이 안되죠. 

UR계약이 아주 힘든편은 아닙니다. 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거나 고정수입이 일정정도 있는 경우 혼자 계약이 가능합니다. 딱히 보증인이 필요없어요(긴급연락처는 필요합니다) 물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시키킹 레이킹등이 과하지도 않구요, 외곽의 경우에는 주차장도 저렴하게 빌릴 수 있습니다.

오래된 물건이라 주변 이웃들이 연로하신 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밤 9시만 되면 주변이 진짜 조용합니다. 풀벌레 소리만 납니다. 생활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던 것이 걸어서 10분정도 되는 곳에 세븐홀딩스의 큰 쇼핑몰이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은 워낙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미리 탐방 갔을 때 다 확인하고 계약 하는 부분이라서 상상했던 것과 다른 점은 없었습니다.

나쁜 점은 물건 자체가 오래되니까 관리유지비가 쓸데없는 곳에서 빠집니다. 특히 곰팡이가 너무 잘 피어서 건조제나 방취제등을 사서 넣느라 바빴습니다. 아무리 힘써도 곰팡이가 안 없어졌습니다. 문을 열어 놓기도 겁났던 것이, 주변이 너무 녹음이 푸르른지라 벌레가 많았어요. UR은 기본적으로 방충망이 없습니다. 입주한 사람이 따로 맞춰야 해요. 그렇게 저렴한 것도 아니고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 방충망을 당연히 생략했지요. 창문단속을 단단히 했는데도 언제 어떻게 벌레가 들어와 앉아있어서 식겁한 적도 있었어요. 

또 이 주변 기후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사항이 없어서 갑자기 돌풍과 낙뢰로 유명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약간 황당했습니다. 역에서 집까지는 평균 20분정도 걸려서 자전거로 이동하는데 폭우가 내리고, 돌풍이 너무 강해서 자전거를 탈 수 없던 경우가 몇번인가 있었습니다. 일본 도심 외곽, 특히 산과 가까울 수록 기후가 굉장히 다이나믹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실제로 사는 사람을 알지 못하는 이상, 집계약 할때 이런 점까지 다 알고 있을 수가 없죠.

3. 특이사항

좀 특이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이 집을 가계약한 날에 관리사무소에 10통이 넘는 전화가 1분 간격으로 오더랍니다. 무슨일일까 하여 전화해보니 계약시에 한가지를 말씀드리는 것을 잊어버렸는데, 이 방이 알고보니 사고물건인데 그래도 계약을 하시겠냐는 것이었어요. 혹시 계약을 물리고 싶다면 그럴 수 있다, 대신 계약하면 사고물건이니 1년간 월세를 반으로 깎아주겠다. 라는 내용이었어요. 보통 사고물건은 범죄나 사망 등에 관련된 경우인데, 이번 경우는 사망이라고 했어요. 이거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인데, 저는 사망이어도 어떤 사망인가가 중요했어요. 자세한 사항은 계약전에 공유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담당자는 구체적인 대답을 하길 어려워했지만, 어쨌든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고사는 아닌듯하여 계약은 계속 진행했습니다. 나중에 계약서에 관련사항(자연사, 병사)을 기재해 놓았더라구요. 

이로인해 2DK에 45평방미터정도인 이 방의 월세는 단 2만엔이었습니다. 이때는 취미생활(스노보드)에 엄청 돈을 쏟아 붓던때라 이 월세가 참 고마웠어요. 광열비가 많이 나왔죠, 집이 오래되다보니 난방비 냉방비가 많이 나왔습니다.

들어올때도 이랬는데 나갈때도 특이했습니다. 이 부근이 재개발(!)이 된다며 나가달라는 통보가 왔습니다. 이 UR단지가 3단지로 구성 되어있었는데, 제가 거주중인 3단지만 재개발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향후 5년간에 점차적으로 3단지 입주민을 내보낸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사비용도 다 지불하고, 주거 지원으로써 다른곳 UR물건을 반값에 몇년간 제공하거나, 아니면 보상금을 일시금으로 지불하거나. 두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민간 물건으로 이사하고 싶었기때문에 일시금을 선택했습니다. 

결론. 떠날 때

보상금 줄테니 나가라고해서 옳다쿠나 나온것도 있지만, 사실 너무 물건이 낡아 오래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아토피가 있는데 이곳에 살았던 1년간 계속 아토피가 크던 작던 계속 있었어요. 내부 관리도 굉장히 힘들구요. 녹음이 푸르른 것도 일상생활이 되면 식상해지고, 더욱이 아직 젊은데 너무 외진데 사니 왠지 활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라는게 이런 겁니다...) 그래서 마침 돈도 들어왔겠다 돈 펑펑 써가면서 조금은 도심쪽으로 이사하고, 건축된지 얼마 안된 물건으로 옮겼습니다. 이 돈 펑펑 써가면서라는게, 여기 나갈때 처음으로 포장이삿짐을 이용했거든요. UR이사올 때는 세단 하나 빌려서 2,3왕복하며 손수 이사했습니다. 오래된UR은 에어컨도 직접 달아야 해서 에어컨도 중고샵에서 사서 실외기랑 차에 실어서 옮겼죠. UR부터 가전이라던가 살림이 늘어난 것도 있긴 한데, 월세도 싸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서 이런 서비스도 이용해 보는 여유도 생겼으니 나름 일본에 정착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